그러면, 이 세상에 '어떠한 훌륭한 사람이 있다. 훌륭한 스승이 있다'고 할 때 그 스승한테 가면 다 해결돼요? 그 스승도 마찬가지라구요. 여기 레버런 문에게 묻기를 '레버런 문은 어떻소? 하더라도 나도 여러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거 어떻게 된 거냐 이거예요.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내가 어디로 가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길을 가려 가는 것입니다. 그 길이 제일 중요한 길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아는 사람을 찾고 싶은 거라구요. 결론적으로 아는 사람을 찾고 싶은 것이다 이거예요. 세계 사람들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두 종류로 가를 수 있습니다. 그랬을 때, 아는 사람이 많으냐, 모르는 사람이 많으냐?「모르는 사람입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모른다 이거예요. 아는 사람은 지극히 극소수다 이거예요. 그리고 안다고 하는 사람이 확실히 아느냐, 잘못 아느냐 하면 그것도 모른다구요. 간다고 하지만 그 방향은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다 이거예요. 직선으로 간다는 것을 모른다 이거예요. 여러분은 오늘날까지 미국에서 사는데, 미국은 건국한 지 2백 년 역사가 되어 옵니다. 대체로 볼 때에, 아는 사람 가운데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공부를 해서 아는 사람이 있고 영감(靈感)을 받아서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구요. 역사시대를 보면 영적인 세계를 예언하는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철학자. 철학을 하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예언자가 세계를 지배했느냐. 철학자가 세계를 지배했느냐?「예언자」 예언 자?「예」 사람은 신비로운 것을 좋아해요, 정상적인 것을 좋아해요?「신 비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걸 볼 때에, 새역사를 지배하고 앞으로 역사를 지배할 사람은 어떠한 종류의 사람이냐? 신비성을 띤 예언자들이 주체성을 갖기를 모든 사람이 바랄 것입니다. 왜? 인간은 신비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가 요구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철학자가 아니라 예언자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성적으로 봐도 신비성을 좋아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그럴 필요가 있다는 것이 공통적인 결론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추리할 수가 있다구요. 그렇게 생각돼요?「예」 이와 같이 생각해 보게 될 때, 역사를 지배한 사람은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언자라든가 선지자라든가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국운이 좌우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알 수 있다구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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