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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3대를 초월해야 됩니다. 복귀역사는 소생, 장성, 완성 단계를 거치지요? 따라서 3대를 초월해야 됩니다. 증조 할머니뻘 되는 여자를 자기 상대로 맞을 수 있는 심정적인 훈련을 받지 않고는, 이 땅 위에서 이상적인 책임을 할 수 없습니다. 안 그래요? 그렇잖아요? 역사는 소생역사, 장성역사, 완성역사지요? 그러니까 3단계로 말하면 어머니, 다시 말하면 여편네, 할머니, 증조 할머니 이 3대를 중심삼고 사랑하는 데 있어서 거리낌없이, 싫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할 때 내가 당연히 가야 할 길로서 생각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진 사나이가 아니고는 메시아의 사명을 못 한다는 것이 원리관이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길을 나설 때에 미인 여자를 어머님으로 삼겠다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구요. 지금 사지판에 있는, 운명이 경각에 달린 그 할머니가 내 하나밖에 없는 상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하나님의 모든 공의의 논의도 할 수 있는 심정을 어떻게 갖고 나오느냐 하는 문제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3대를 초월하여야 됩니다. 3단계를 넘어서야 됩니다. 심정의 3단계를 넘어서야 됩니다. 그러려면 증손자에서부터 증조할아버지, 즉 나를 중심삼고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까지 3대를 초월해야 되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20대에 못 만나더라도, 20년을 지나 80세 이상을 중심삼고라도 자기를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상대를 발견할 수 있느냐 없느냐…. 문제는 그거라구요. 그러려면 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여자를 택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여자, 남자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여자를 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나를 위해서 충성하는 할머니가 있으면 그 할머니를 붙들고 이상적인 사랑의 대상적인 존재로서 사랑할 수 있다 하는 마음을 유발시키지 않으면 복귀세계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원리적인 기준이라구요.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임자네들 앞으로 영계에 들어가게 되면 선생님 앞에 얼굴을 못 든다는 거예요. 그래도 선생님이 임자네들에게 격식에 맞는 여편네들을 전부 다 택해 줬지요. 그런데 이것을 뒤죽박죽해? 그런 녀석들은 핑계를 대도, 안 듣고도 벌써 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럴 때가 온다구요. 앞으로 전부다 법적으로 처리할 때가 온다구요. 그야말로…. 두고 보라구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한 것도 안 보시려고 6천년 동안 뒤넘이쳐 나오시는데, 선생님이 복귀의 해원성사를 하기 위하여 비참한 가운데 수많은 희생자를 내 가지고 해원성사의 하나의 소망의 터전을 세워 놓았는데, 축복가정이라는 패들이 자기 멋대로 바람을 피워 가지고 잘 될 것 같아요? 자기 70대까지의 선조가 걸린다구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자,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책임자들은 할머니들을 그 누구보다도 존경하면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80세가 넘은 할머니가 있으면 자기 증조 할머니 이상 존경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60이상 된 할머니들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40이상 된 아주머니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거치고 나서야 30대에 들어와 가지고 예수님이 대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80노인 안나가 예수님을 위해서 증거했어요. 왜 그랬는지 알아요? 심정적인 기준에서 '어린 예수를 위해서 나는 죽습니다' 하는 길을 거치지 않고는 예수가 20대가 되어 가지고 정상적인 상대를 못 만난다는 거예요. 해와와 세 천사장이 전부 다 타락하지 않았어요? 세 천사장이 동방박사 세 사람이라구요. 그러므로 그것은 에덴 동산에 있어서의 세 천사장과 해와를 복귀한 형이라구요. 그 다음에 양치는 목자를 중심삼고 모든 천군천사라고 하는 것은 뭐냐? 천사세계를 상징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이 예수 앞에 귀결되어 가지고 죽더라도 영원히 그와 더불어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동방박사 세 사람은 예수를 증거하고 도망가라는 게 아니었다구요. 만일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게 되면 동방박사 세 사람이 합세해 가지고, 공모해 가지고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를 그 나라에 데려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어떻게 됐겠어요? 그들은 동방박사이니만큼 삼국을 연결시킬 수 있는 대표자로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래도 그 사회에 있어서 국경을 마음대로 넘어다닐 수 있는 최고의 실력자들이 아니냐? 만약에 그런 세 사람이 마리아와 요셉과 하나돼 가지고 예수를 모시고 키웠더라면 마리아가 협조 못 했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문제는 이런 원칙에서 전부 다 엇갈린 거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문제는 심정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지방에서 활동하는데 왜 실적이 안 나오느냐? 악착같지가 않아요. 간절하지가 않아요. 배고플 때에 밥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나지를 않아요. 그런 마음이 나나요? 밥을 먹는 것은 실감이 나지요? 문제는 여기에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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