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인류의 고난을 짊어지고 인간의 말단의 자리에서 출발하여 최후에는 골고다 산정까지 갔습니다. 그 자리는 예수 일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자리였습니다. 오! 하나님의 아들, 하늘의 황태자, 하늘의 왕자의 모습은 어디로 갔던고! 인류의 메시아, 인류의 구세주로서의 그 모습은 어디 갔던고! 그 자리는 자신의 어떠한 가치를 일푼어치도 주장할 수 없는 분하고 억울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죽음의 고개를 넘어 하늘을 바라보시며, 하늘의 이념동산을 향하여 나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이념이 사망의 힘보다 강했고, 그의 이념이 역사적인 어떠한 힘보다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사망권을 헤치고 부활이 벌어졌고, 반대하는 인간들을 회개시켜 오늘날의 기독교가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가신 예수의 뒤를 따라 가야 할 오늘의 우리는 죽어도 가야 하고 살아도 가야 합니다. 이렇게 가고 싶은 마음이 여러분에게 사무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충격을 받아도 그 이념을 향해 가고 싶소이다. 먹어도, 굶어도, 매를 맞아도, 천대를 받아도, 핍박을 받아도 가고 싶소이다' 할 수 있는, 사망의 힘보다도 큰 느낌이 없다 할진대, 역사적인 종말에 나타나는 대심판에서 사망권을 넘을 수 없습니다. 가고 싶은 마음, 즉 `이래도 가고 저래도 가겠습니다. 아버님이여, 당신이 계심을 알았사오니, 당신의 이념 세계가 이렇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아무도 안 가더라도 나만은 가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는 길을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인간시조가 처음부터 평탄과 행복과 기쁨으로 출발하지 못하고 슬픔과 비애와 역경과 공포와 불안 가운데서 출발했던 연고로 이것을 탕감해야 할 최종말기에 있는 우리도 그러한 역사적인 모든 슬픈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의 천적인 이념을 소개해 줄 메시아가 나오지 않는 한 인류는 불안과 공포와 사망권내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살 길이 없다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본래 제물의 교단입니다. 십자가의 교단입니다. 피 흘리는 교단입니다. 봉사하는 교단입니다. 먼저 죽기 위해 나서는 교단입니다. 하늘이 움직여 나온 기독교는 이러한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전통을 빛냈거늘, 오늘 이 시대의 기독교에 이런 것이 없다면 천벌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단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세계의 운명을 개척해야 할 기독교는, 세계적인 서러움을 갖고 통곡하시던 예수 대신, 골고다 산정에서 피를 흘리며 운명하시는 그 경각에 `저들의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하시던 예수님의 심정에 사무쳐 외칠 수 있는 하나의 목자, 하나의 양이 되어 하늘 땅의 원한을 헤치고 새로운 이념과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이상동산을 소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반대와 핍박 끝에 골고다 산정에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몰랐던 이스라엘민족 가운데 그들을 대신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이 예수의 죽음을 놓고 죽음을 무릅쓰고 하늘 앞에 나갔던 것과 같이 죽음을 각오하고 하늘 앞에 나타날 수 있는 목자, 그러한 양떼가 있다면 그들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천적이념을 연결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새로이 감정해야 되겠습니다. 나타나는 어떠한 지도자도 다시 감정해야 되겠습니다. 유대교 제사장들, 그들은 어떤 무리였는가. 그들은 천적인 새로운 소식을 유린한 무리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무엇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고 무엇이 우리의 나라는 정신적으로 주관하고 있는가를 재분석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이 시대적인 모든 죄악의 기반을 타파하고, 새로운 소망 가운데로 이끌어 주는 새로운 이념에 불타게 할 수 있는 충격을 여러분이 교단을 통하여 받지 못할진대, 그 교단은 제1 이스라엘이 받은 것과 같은 심판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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